
나는 비건 식단을 유지하면서 어느 순간부터 무엇을 먹는지보다 어떤 환경에서 먹는지가 훨씬 중요하다는 사실을 체감하게 되었다. 특히 최근 몇 년간 한국의 기후 변화는 식단을 고정된 방식으로 유지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예전처럼 사계절이 또렷하게 나뉘지 않고, 폭염과 장마, 한파가 불규칙하게 반복되었다. 이 변화는 식단에도 그대로 영향을 미쳤다. 평소 잘 맞던 식사 방식이 어느 날 갑자기 불편해지는 경험이 늘어났다. 처음에는 내 생활 습관이나 관리 문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같은 실수가 반복되자 원인은 개인이 아니라 환경이라는 쪽으로 생각이 이동했다. 그때부터 나는 식단을 지키는 대신, 식단을 조정하기 시작했다. 이 글은 이론이나 원칙이 아니라, 실제 생활 속에서 기후 변화에 반응하며 바꿔왔던 식단의 기록한 것이다. 환경이 달라질 때 식단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에 대한 나의 경험을 솔직하게 정리해보려고 한다.
예상보다 길어진 여름: 조리 방식 자체를 바꾼 경험
나는 여름이 7월과 8월에만 존재하던 시절의 식단 방식을 그대로 유지하려다 한계를 느꼈다. 9월 초까지 이어지는 폭염 속에서 뜨거운 밥과 국 중심 식사는 점점 부담이 되었다. 처음에는 식사량을 줄이는 방식으로 대응했지만, 에너지 저하가 빠르게 나타났다. 땀은 많이 나는데 힘이 쉽게 빠졌다. 그래서 나는 양을 줄이는 대신 식사의 형태를 바꾸기로 했다. 밥은 갓 지은 상태로 먹기보다 잠시 식혀 미지근하게 먹었다. 음식의 온도를 낮추려고 노력했다. 국은 하루 세끼 중 한 끼로 제한했다. 대신 콩나물, 오이, 애호박처럼 수분 함량이 높은 채소를 중심 재료로 삼았다. 조리는 최대한 짧게 하고, 불 앞에 서는 시간을 의도적으로 줄였다. 이 변화 이후 식사 후 피로감이 눈에 띄게 줄었다. 길어진 여름에는 여름용 식단을 따로 설계해야 한다는 점을 이 경험을 통해 분명히 깨달았다.
갑작스러운 폭우와 장마: 저장 방식이 식단을 좌우했던 시기
나는 유난히 장마가 길었던 해에 식단이 크게 흔들린 경험이 있다. 습도가 높아지자 채소가 생각보다 빨리 상했고, 냉장고 안에서조차 관리가 어려워졌다. 평소처럼 신선 채소 위주로 식단을 구성하던 방식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장 보는 빈도를 늘려 대응하려 했지만, 오히려 피로만 커졌다. 그래서 나는 접근 방식을 바꿨다. 생채소 비중을 줄이고, 데쳐서 물기를 최대한 제거한 나물을 기본으로 삼았다. 말린 미역, 다시마, 표고버섯 같은 건조 식재료 활용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장을 보고 오면 바로 손질하고, 조리 가능한 상태로 만들어 두었다. 이 방식은 장마철 식단 불안을 크게 줄여주었다. 장마가 길어질수록 식재료의 신선함보다 안정성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이 시기에 몸으로 배웠다. 기후 변화는 저장 방식까지 포함해 식단을 다시 구성하도록 만들었다.
늦어진 가을과 흐려진 환절기: 전환 단계를 만들었던 경험
나는 예전에는 9월이 되면 자연스럽게 가을 식단으로 넘어갔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 전환이 점점 어색해졌다. 여름 더위가 점차 길어지면서 몸이 가을 식단을 바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한 번은 곡물과 뿌리채소 중심으로 식단을 너무 빨리 바꿨다가 소화 불편을 겪었다. 이후 나는 식단을 전환할 때 중간 단계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름 식단에 가을 재료를 소량씩 섞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여름 채소 반찬에 감자나 고구마를 조금 곁들였다. 국도 갑자기 진하게 바꾸지 않고, 농도를 점진적으로 높였다. 이 완충 단계 덕분에 몸의 반응이 훨씬 부드러워졌다. 계절에도 환절기가 있는 것처럼 식단에도 환절기를 가져야 했던 것이다. 기후 변화로 계절 경계가 흐려진 상황에서는 식단 역시 선을 그을 수 없다는 점을 이 경험을 통해 확실히 느꼈다.
예측 불가능한 한파: 식사 횟수를 조정했던 선택
나는 갑작스러운 한파가 찾아왔던 겨울에 기존 식사 구조로는 버티기 어렵다는 것을 느꼈다. 평소 두 끼 위주의 식사를 하던 나는 그 시기에 유독 허기와 집중력 저하를 자주 경험했다. 처음에는 간식으로 에너지를 보충하려고 했지만, 오히려 식사 리듬이 더 흐트러졌다. 그래서 나는 식사량이 아니라 식사 횟수를 조정하기로 했다. 한 끼를 늘리는 대신, 소량의 따뜻한 식사를 추가했다. 묽은 국이나 죽 형태로 부담 없이 먹었다. 이 방식은 체온 유지와 에너지 안정에 도움이 되었다. 한파가 지나간 뒤에는 다시 원래의 식사 구조로 돌아왔다. 이 경험을 통해 나는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방법이 반드시 더 먹는 것일 필요는 없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때로는 나누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미세먼지와 대기 환경 변화: 식단의 목적이 바뀌었던 시기
나는 미세먼지가 심했던 어느 봄, 평소와 같은 식단이 유난히 불편하게 느껴졌던 기억이 있다. 몸이 무겁고, 식욕이 명확하지 않았다. 이때 나는 식단의 목적을 포만에서 회복으로 전환했다. 씹는 시간이 긴 음식보다 국물과 부드러운 조리 위주로 식사를 구성했다. 채소도 생으로 먹기보다 데치거나 끓였다. 식사량은 자연스럽게 줄었지만, 식사 후 피로감은 덜했다. 이 시기에는 영양 균형보다 컨디션 관리가 더 중요하게 느껴졌다. 또한 미세먼지가 많은 날에는 유해물질이 몸 안으로 많이 들어오기 때문에 해독에 집중했다. 수분을 충분히 섭취하여 노폐물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했다. 견과류도 충분히 섭취하여 간 건강에 필요한 무기질을 보충하였다. 기후 변화는 식단의 구성뿐 아니라, 식단의 목적 자체를 바꾸게 만든다는 사실을 이 경험을 통해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식단 변화에 유연함을 줘서 계절 변화에 대응하기
나는 기후 변화에 따라 식단을 조정했던 여러 경험을 통해 하나의 확신을 갖게 되었다. 지속 가능한 식단은 고정된 메뉴가 아니라, 상황에 반응할 수 있는 구조라는 점이다. 폭염, 장마, 한파, 흐려진 환절기, 대기 환경 변화까지 한국의 기후는 점점 더 예측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이 환경에서 식단을 유지하는 방법은 참는 것이 아니라, 대응하는 것이다. 나는 식단을 바꾸며 실패했다는 느낌보다 환경과 협상하고 있다는 느낌을 더 많이 받았다. 이 감각은 식단에 대한 부담을 크게 낮춰주었다. 한국형 비건 식단의 강점은 바로 이 유연성에 있다. 정해진 규칙보다 조정 가능한 기준이 있을 때 식단은 오래간다. 기후 변화 속에서 살아가는 지금, 식단 역시 고정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변화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일상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