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비건 식단을 선택할 때부터 왜 하는지보다 어떻게 해야 오래갈 수 있는지를 더 많이 고민했다. 단순한 신념이나 유행만으로는 식단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것을 이미 여러 번 경험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기후와 생활 리듬을 무시한 식단은 결국 무너진다는 점을 몸으로 겪었다. 처음에는 비건이라는 개념 자체에 집중했다. 무엇을 먹지 말아야 하는지, 어떤 기준을 지켜야 하는지에 더 신경을 썼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방식은 나를 점점 지치게 만들었다. 식단이 삶을 돕기보다, 삶을 관리하게 만드는 느낌이 들었다. 하루에 세끼를 먹는데 먹을 때마다 계속 관리한다는 느낌으로 식사하는 것은 매우 지치는 일이다. 그때부터 나는 비건인지 아닌지보다 지금 이 환경에서 무리 없는 식단인가를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다. 이 질문의 끝에서 선택하게 된 것이 바로 한국 기후에 맞는 비건 식단이었다.
몸의 신호를 더 이상 무시할 수 없었다
비건 식단을 시작하면 아무래도 육류 등 못 먹는 음식이 있기 때문에 불편한 몸의 반응이 생긴다. 이전보다 에너지가 부족하고 피곤해졌다. 나는 한동안 몸이 보내는 신호를 의지로 덮으려 했다. 피곤해도 참고, 허기가 잦아도 식단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특히 계절이 바뀔 때마다 반복되는 불편함을 개인의 관리 부족으로 해석했다. 여름에는 식사 후 쉽게 지치고, 겨울에는 먹어도 금방 허기가 왔다. 그럼에도 나는 식단의 방향을 바꾸기보다 더 철저하게 지키려고 했다. 하지만 이 방식은 오래가지 않았다. 몸은 점점 더 분명한 신호를 보냈고, 그 신호는 무시할수록 커졌다. 나는 그제야 문제의 원인이 식단에 대한 의지 부족이 아니라, 환경과의 맞지 않기 때문임을 인식하게 되었다. 한국의 기후를 고려하지 않은 식단은 결국 몸과 계속 충돌하고 있었다. 이 깨달음은 식단을 다시 선택하게 만든 가장 직접적인 계기였다.
사계절 변화가 뚜렷한 환경에서의 현실적인 선택
나는 한국에서 살아오며 사계절의 차이를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여 왔다. 여름과 겨울의 온도 차이, 습도, 활동량의 변화는 생활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식단만은 이 변화에서 독립된 것처럼 개별적인 것으로 다뤄왔다. 지금 돌아보면 꽤 무리한 접근이었다. 여름과 겨울에 같은 방식으로 먹으려 했던 것이 오히려 식단을 어렵게 만들었다. 한국 기후에 맞는 비건 식단은 계절별 차이를 전제로 한다. 여름에는 가볍게, 겨울에는 안정적으로 먹을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나는 이 유연함이 현실적으로 매우 중요하다고 느꼈다. 계절에 따라 식단이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는 전제는 심리적 부담을 크게 줄여주었다. 완벽하게 동일한 식단을 유지해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식단이 몸과 맞지 않으면 조정할 수 있는 여지가 있기 때문에 식단을 오래 유지할 수 있다. 식단에 대한 지루함도 줄여주었다. 이 점에서 한국 기후에 맞는 비건 식단은 이상이 아니라 현실적인 선택이었다.
한국형 식사 구조에 대한 재인식
나는 식단을 다시 돌아보며 한국형 식사 구조가 가진 강점을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다. 밥, 국, 반찬으로 이루어진 식사는 오랫동안 한국 기후에 맞춰 다듬어진 결과였다. 여름에는 국이 가벼워지고, 겨울에는 따뜻한 국물이 중심이 된다. 반찬 역시 계절에 따라 조리 방식과 재료가 달라진다. 나는 그동안 이 구조가 너무 익숙해서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비건 식단을 고민하면서 이 구조가 얼마나 유연한지 분명히 보이기 시작했다. 이 틀 안에서는 고기가 없어도 식사가 무너지지 않았다. 오히려 식사의 중심이 재료와 조합으로 이동했다. 한국형 식사 구조를 그대로 유지한 채 비건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점은 식단 선택에 큰 안정감을 주었다. 새로 무언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보다, 이미 있는 것을 활용할 수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완전히 새로운 식단 구조에 적응할 필요도 없었다. 이것은 내가 한국형 비건 식단을 선택한 중요한 이유 중 하나였다.
지속 가능성에 대한 기준이 달라졌다
나는 예전에는 식단의 옳고 그름을 기준으로 선택을 했다. 비건 식단에 대해 이론적으로 맞는지, 윤리적으로 충분한지에 집중했다. 부족해지는 영양소가 생기기 때문에 영양소를 계산하기도 했다. 하지만 매번 식단을 고민하면서 구성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여러 번의 실패를 거치며 지속 가능성에 대한 기준이 달라졌다. 이제는 이 식단을 1년 뒤에도 할 수 있는지를 먼저 묻게 되었다. 한국 기후에 맞는 비건 식단은 이 질문에 비교적 쉽게 답을 주었다. 무리하지 않아도 되고, 계절에 따라 조정할 수 있으며, 생활 리듬과 크게 충돌하지 않았다. 나는 이 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느꼈다. 식단은 단기간의 실천보다, 장기적인 반복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오래갈 수 있는 식단은 결국 생활에 잘 스며든 식단이다.
식단이 삶을 방해하지 않기를 바랐다
나는 식단이 내 삶의 중심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식단은 삶을 지지하는 역할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기후를 고려하지 않았던 식단은 계속해서 나의 주의를 요구했다. 무엇을 먹을지, 언제 먹을지, 어떻게 조정해야 할지를 끊임없이 고민하게 만들었다. 반면 한국 기후에 맞는 비건 식단은 이런 질문의 빈도를 눈에 띄게 줄여주었다. 계절과 환경이 어느 정도 선택을 대신해 주었기 때문이다. 환경의 흐름에 자연스럽게 식단을 맡기면 되었다. 식단이 더 이상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이미 정리된 구조처럼 느껴졌다. 이 안정감은 생각보다 큰 차이를 만들었다. 식단에 쓰는 에너지가 줄어들자, 삶의 다른 영역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 나는 이 상태가 내가 원하던 식단의 모습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좋은 식단은 편안함을 주는 식단이다
나는 여러 시행착오 끝에 한국 기후에 맞는 비건 식단을 선택하게 되었다. 그 이유는 거창한 신념 때문이 아니었다. 몸의 신호를 더 이상 무시할 수 없었고, 사계절이 분명한 환경에서 무리한 식단을 유지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형 식사 구조의 유연함과 계절에 따른 조정 가능성은 식단을 훨씬 현실적으로 만들어주었다. 무엇보다 이 식단은 나의 생활 리듬과 크게 충돌하지 않았다. 이 경험을 통해 나는 식단 선택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이 잘 맞는가라는 질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한국 기후에 맞는 비건 식단은 나에게 맞는 선택이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비교적 편안하게 이어오고 있다. 이 편안함이야말로, 내가 이 식단을 선택한 가장 솔직한 이유다.